여름 편의 시작부터 끝까지 차련과 채승은이 주인공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이 나기 때문에 만나지 못했을 때를 상상하기가 어렵네요. 만약에 보충에서 만나지 못한 채 미스터리 클럽이 폐부가 된다고 해도 양한나 부장이 이번엔 미스터리 클럽 2를 만들고 이에 화가 난 승은이 그걸 다시 폐부시키려고 하고… 3를 만들고.. 4를 만들고를 반복할 테니 그 중 어디선가 채승은은 반드시 차련과 엮이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채승은이 차련에게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사실 채승은만이 아니라 차련의 성장을 위해서도 서로의 만남은 꼭 필요하거든요.
작중에서 특히 초반부의 차련은 계속해서 부유하는 캐릭터입니다. 걸핏하면 지각을 하거나 수업에 빠지거나, 보충에도 나가기 싫어 진저리를 치죠. 차련이 학교를 기피하는 이유는 학교라는 공간이 ‘진로’나 ‘공부’ 같은 미래를 위해 변화를 강요하는 곳이기 때문이에요. 차련은 변화를 극도로 싫어하고 어차피 노력해도 안 될 거야~ 하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무력감이 기저에 깔려있거든요. 물론 이런 정처 없는 방황은 미스터리 클럽으로 인해 일부분 해소가 됐지만 차련 본인 자체는 딱히 성장을 한 게 아니에요. 미스터리 클럽에 들어간 이후에도 여전히 변하는 것이 귀찮고, 귀찮은 것에 아예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는 상태죠. 그리고 그런 차련의 앞에 나타난 채은은 차련이 그토록 싫어하는 변화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차련이 승은을 처음 만났을 땐 둘 사이에 ‘변화’ 라는 키워드를 교차시켰어요. 왜냐하면 승은 역시 차련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에 시달려 온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채승은은 변하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과거의 자신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강한 자신으로 바뀌고 싶어 발버둥 치죠. 세상이 아무리 모질게 굴어도 변함없이 원래대로의 자신으로 있고 싶다는 본심을 숨기면서요. 승은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타인에게 휘둘리기만 했던 차련이 이번엔 거꾸로 승은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승은 역시 차련 앞에선 자신의 원래 모습으로 자꾸 돌아와 버리죠. 어떻게 보면 서로가 상대의 스탠스를 방해하고 있는 셈이에요. 나는 변하기 싫어, 나는 변하고 싶어. 그런데 얘랑 있으면 뭔가 평소의 나랑 달라. 얜 뭐지? 밀어내야 하는데 그것도 잘 안 됩니다. 그렇게 보충의 마지막 날이 오고, 차련은 심란해합니다. 지금까진 보충을 구실로 만났지만 이게 끝나면 그대로 타인이 될게 분명 하거든요. 승은의 경우 차련을 이용하려 접근 했단 죄책감이나 과거처럼 또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절대로 먼저 다가가지 않을 겁니다. 차련 본인은 거기까지 생각하진 못하겠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진전시킬지 끝낼지 주도권을 자신이 쥐고 있다는 것은 파악한 상태에요. 채승은을 받아들이는 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차련은 냉소적이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빗속을 뛰쳐나가거나 쫓아가거나… 승은과 밀고 당기기를 거듭한 끝에 차련이 내린 방안이 84화의 ‘생각해 볼게’이고 거기에 대한 결론이 95화의 ‘넌 지금 그대로 괜찮아’입니다.
그러니까 승은에게 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차련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크게 변한 거예요. 귀찮은 변화 그 자체인 채승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하기로 결심한 거니까요. 여름 편은 채승은이 차련을 통해 자신을 인정하고 차련이 채승은으로 인해 변하는 이야기인 거죠. 그러니까 만약 차련과 채승은이 서로를 만나지 않아서 승은이 더욱 자기 파괴적인 어른으로 자랐을지 모른다면, 차련 역시 환경의 변화를 거부하는 자신 안에 갇힌 어른이 됐을지도 모릅니다.